드디어 미국에 도착했다.
아내와 도하와 함께 센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 도착한 시간이 오전 11시 30분쯤. 버클리(Berkeley)를 떠난 지 13년 만에 다시 Bay Area로 돌아왔다. 13년 전에는 짐가방 두개 들고 혼자 온 유학생이었는데, 이번에는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스탠퍼드(Stanford)로 오게 됐다.
그때는 혼자 유학생으로 왔는데, 이번에는 아내와 아들와 함께 다시 학생으로 돌아왔다는 것이 묘한 기분이었다.
입국심사와 짐을 찾는 데만 1시간 반 넘게 걸렸다. 짐도 많고 도하도 있고, 미국 생활을 사실상 처음부터 다시 세팅해야 하니 공항에서부터 정신이 없었다.
사실 출국 전까지는 미국에 와서 어떻게 살지 제대로 생각해볼 여유조차 거의 없었다. 출국 전날 저녁까지도 인수인계와 회의에 정신이 없었고, 밤 10시가 넘어서야 본격적으로 짐을 싸기 시작했다(정확히 말하면 짐은 거의 아내가 쌌다). 나는 마지막까지 회사 일을 붙잡고 있었고, 아내는 그 옆에서 세 식구의 1년치 생활을 캐리어에 욱여넣고 있었다.
마지막 한 달 정도는 정말 중요한 업무 몇 가지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일단 비행기만 타면 된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버텼던 것 같다. 연수 기간 동안 무엇을 하고 어떻게 지낼지 설레는 마음은 있었지만, 정작 그 생활을 구체적으로 준비할 정신적 여유는 없었다. 조금 지쳐있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4~5월쯤 업무가 조금 느슨했을 때 미리 준비했으면 훨씬 편했을 텐데, 그때는 이상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아마 긴 시간 달려온 뒤라 그냥 쉬고 싶었던 것 같다. 결국 미국 생활 준비의 상당 부분은 미국에 도착한 뒤의 내가 해결해야 할 숙제로 남았다.
첫날부터 제대로 액땜
급하게 찾아본 Wingz라는 앱을 이용하려 했는데 시작부터 꼬였다. 한국 카드 결제가 fraud prevention 때문인지 계속 거절됐다. 겨우 결제 문제를 해결하고 차를 기다렸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다시 확인해보니 예약 날짜를 출국 다음 날로 되어 있었다(바보). 시간을 당겨보려고 했지만 예약 시점으로부터 최소 두 시간 뒤부터만 지정할 수 있다고 해서, 결국 Wingz를 포기하고 Lyft를 불렀다. 첫날부터 제대로 액땜을 했다 싶었다.
Lyft를 타고 먼저 Rains Housing Service Center로 가서 집 열쇠를 받았다. 기사분에게 잠깐 기다려 달라고 부탁했는데 내가 열쇠를 받는 동안 10분 정도를 기다려 주셨다. 기사분과 영어로 의사소통이 아주 매끄럽지는 않았는데, 어느 순간 기사분의 어머니와 전화 통화까지 하게 되는 상황도 생겼다.
우리 집이 된 Escondido Village
마침내 우리가 앞으로 1년 동안 살 Escondido Village South의 집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아, 여기가 정말 우리 세 식구가 살 집이구나” 싶었다.
사진과 Stanford Housing 홈페이지에서만 보던 공간이 갑자기 ‘우리 집’이 되었다. Stanford 캠퍼스 안에서 가족과 함께 사는 생활이 기대되어 기분이 좋았다.
짐을 조금 풀고 집 근처 놀이터에도 나가봤다. 도하가 뛰어노는 모습을 보니 가족을 데리고 온 게 새삼 실감났다. 13년 전 Berkeley에 처음 왔을 때의 나는 내 앞가림 하나만 하면 되는 학생이었는데 감개무량하다.
미국에서의 첫 끼 그리고 밤 10시의 Target
저녁은 집 바로 옆 Ray’s Grill에서 먹었다. 메뉴가 다양했는데 Axe Burger, Cardinal Burger, sweet potato fries, BBQ wings 여섯 조각을 주문했다. 아내에게는 BBQ wings도 생각보다 매웠던 모양이다. 미국에 도착한 첫 식사다운, 꽤 미국적인 저녁이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생활용품이 아무것도 없다 보니 Uber를 타고 Mountain View 소재 Target으로 이동했다. 폐점 시간이 밤 10시였는데 거의 9시 50분까지 쇼핑했다. 세제부터 베개, 욕실용품, 도하 물건까지 당장 생활하는 데 필요한 것을 하나씩 카트에 넣었다.
한국 집에서는 그냥 ‘거기 있던’ 물건들이 여기서는 전부 ‘사야 할 항목’이 되었다. 그런데 베개 하나, 세제 하나, 쓰레기통 하나까지 새로 고르는 일이 귀찮기보다 오히려 재미있었다. 텅 빈 집을 하나씩 채워가는 과정 자체가 새 생활의 시작처럼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와 짐을 풀다 그대로 잠들었고, 눈을 떠보니 새벽 4시였다. 시차는 역시 피해갈 수 없었다.
앞으로의 1년
오늘 하루는 정신없이 지나가서 학교를 제대로 둘러볼 시간조차 없었다. 잠깐잠깐 걸어 다니거나 Lyft와 Uber를 타고 오가는 동안 창밖으로 보이는 캠퍼스만으로도 Stanford가 꽤 마음에 들었다.
원래 나무 많고 초록초록한 곳을 좋아하는데, 캠퍼스 곳곳의 큰 나무와 넓은 잔디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사람들도 어딘가 여유로워 보였다. 여기서 1년을 지내게 되어 정말 감사하고 기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Berkeley를 떠난 뒤 13년 동안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가 되었고, 8년을 일했고, 결혼을 했고, 아빠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 다시 Bay Area로 돌아와 학생이 되었다.
아내와 도하와 함께 Stanford 캠퍼스 안에서 1년을 살아볼 수 있다는 것이 참 감사하다. 공부도 많이 하고 싶고, 새로운 사람들도 만나고 싶고, 앞으로 내가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갈지도 진지하게 고민해보고 싶다. 하지만 그것만큼이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에는 세 가족이 그냥 여유롭게 산책하고, 도하와 놀이터에 가고, 이곳의 햇빛을 많이 쬐고 즐기는 시간을 많이 만들고 싶다.
변호사가 된 뒤로 이렇게 긴 시간을 오롯이 나의 공부와 성장, 그리고 가족에게 쓸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올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욕심은 많지만, 이 1년을 반드시 무언가를 ‘성취해야 하는 기간’으로만 만들고 싶지는 않다. 많이 배우고, 많이 경험하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되, 가족과 함께 정말 행복하게 지내는 것 역시 이번 연수의 중요한 목표로 남겨두고 싶다.
출국 직전까지 업무에 매달려 있다가 오늘 갑자기 Stanford의 작은 집에 앉아 있다는 것이 아직도 조금 비현실적이다. 이 기회를 허락하고 지원해준 사무실과, 그동안 응원하고 도와준 많은 분들에게 새삼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든다.
앞으로 1년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전혀 모르겠다. 미국에서 새로운 기회를 발견할 수도 있고, 한국으로 돌아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일하게 될 수도 있다. AI가 세상을, 특히 내가 속한 법률시장을 어떻게 바꿔놓을지도 아직 잘 모르겠다. 1년 안에 반드시 정답을 찾아야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는 지금보다 조금 더 선명해졌으면 좋겠다.
무언가 거창한 답을 얻지 못하더라도, 1년 뒤에는 적어도 지금보다 조금 더 넓어지고 단단해진 사람이 되어 있기를, 그리고 1년 뒤 이 글을 다시 읽었을 때, 오늘 느꼈던 이 묘한 설렘과 낯섦을 기억할 수 있었으면 한다.